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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정서적 방임, 모녀 관계, 성장통)

annabb 2026. 10. 10. 10:38

목차


    영화 속 검은 후드티를 입은 여성이 눈물을 흘리며 나 정신병자야라고 말하는 장면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는 모녀 사이의 갈등을 다루는 영화라고 들었는데, 막상 보고 나니 이건 갈등이라는 말로는 턱없이 부족한 이야기였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깊이 상처받는 게 어떤 느낌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무거웠습니다.



    엄마가 곁에 있어도 아이는 혼자였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어른들이 생각하는 아이의 고민과 아이가 실제로 느끼는 고민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간격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학교에 잘 다니고 밥을 먹고 친구가 있으면 별 문제 없다고 여기는 시선, 저도 그런 시선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영화 속 이정의 상황은 그 간격을 극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극심한 생리통으로 약을 달라는 딸의 메시지를 수경은 읽고도 답하지 않습니다. 애인과 술을 마시며 낭만을 꿈꾸는 시간이 더 중요했던 겁니다. 이것은 단순한 무관심이 아닙니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정서적 방임(Emotional Neglect)에 해당합니다. 정서적 방임이란 자녀의 심리적·정서적 필요를 지속적으로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행위로, 신체적 학대 못지않게 아이의 발달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칩니다(출처: 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Child Maltreatment 연구).

    제가 이 장면에서 가장 마음이 쓰였던 건 이정이 엄마를 원망하는 표정이 아니라, 이미 기대를 접은 것처럼 보이는 표정이었습니다. 화조차 내지 않는 그 얼굴이 더 무거웠습니다.

    외출하고 돌아온 수경은 집에 불이 켜져 있다는 이유만으로 폭언을 쏟아냅니다. 딸을 자신이 불행한 이유로 지목하는 이 심리 구조, 전문적으로는 투사(Projection)라고 부릅니다. 투사란 자신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감정이나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방어기제입니다. 자신의 선택과 삶에 대한 책임을 아이에게 돌리는 방식이 영화 내내 반복됩니다.

    제가 직접 이 영화를 봤을 때, 수경이 나쁜 사람이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결핍을 아이에게 해소하려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게 오히려 더 섬뜩했습니다.

    • 생리통으로 약을 요청하는 딸의 메시지를 무시한 수경 — 정서적 방임의 전형적 사례
    • 집에 불이 켜졌다는 이유로 폭언 — 투사(Projection) 심리 구조의 반복
    • 자신의 결혼과 출산을 딸 탓으로 돌리는 자기 합리화 — 책임 전가의 만성화
    요약: 수경의 행동은 단순한 나쁜 엄마가 아니라, 정서적 방임과 투사라는 심리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이며 이정은 그 안에서 홀로 생존하고 있었습니다.

     

    화해할 수 없는 진실이 터져 나올 때

    영화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장면을 꼽으라면, 저는 마트 주차장 장면을 말하고 싶습니다. 수경은 차 안에서 딸의 머리를 때립니다. 그리고 이정은 그 순간 엄마가 주장해 온 '급발진 사고'가 사실은 고의였다는 것을 폭로합니다. 이 폭로가 터질 수 있었던 건 이정이 용감해서가 아니라,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일 겁니다. 제 경험상 이런 진실은 한 번에 쏟아지는 게 아니라 오랜 시간 눌려 있다가 나옵니다.

    이정이 입원한 이후에도 수경의 행동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사과 대신 게임을 하다가, 외부인이 오면 걱정하는 척 연기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이기심이 아니라 아동학대(Child Abuse) 상황에서 자주 관찰되는 가해자의 이중적 자기 제시 패턴입니다. 아동학대란 신체적 폭력뿐 아니라 정서적 착취, 기만적 행동을 통해 아이의 심리적 안전을 지속적으로 훼손하는 행위를 포함합니다(출처: 세계보건기구(WHO), Child Maltreatment Fact Sheet).

    딸의 동의 없이 합의서에 서명하고, 퇴원한 딸을 외면한 채 누드비치 계획을 세우고, 재판에서 유리한 증언을 강요하는 수경의 행동은 이미 모녀 관계의 언어가 아닙니다. 자동차 회사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딸을 도구로 쓰려는 그 태도에서 저는 오래전부터 이 관계가 이미 파탄나 있었다는 걸 느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이정이 꺼내는 어린 시절 편지 — 회초리로 벌을 내려달라고 썼던 그 문장은 비정상적 훈육 방식이 아이에게 어떤 내면화를 만들어내는지 보여줍니다. 아이는 학대를 학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이 잘못되었다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이 편지 장면을 보면서 멈칫했던 건, 그 글씨가 너무 또렷하고 성실했기 때문입니다. 사랑받고 싶었던 마음이 그대로 묻어 있었습니다.

    요약: 수경의 기만적 행동은 아동학대 가해자의 전형적 패턴이며, 이정의 편지는 비정상적 훈육이 아이의 내면에 남기는 자기 부정의 흔적을 증명합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어른은 완벽한 해결사가 아니다

    영화 벌새를 본 것도 꽤 됐는데, 이 두 영화를 함께 떠올리면 공통된 물음이 남습니다. 왜 아이 주변에는 진심으로 들어주는 어른이 단 한 명뿐일까요? 벌새의 영지 선생님처럼, 이정에게도 그런 어른이 한 명이라도 더 있었다면 달랐을까 자꾸 생각하게 됩니다.

    아이의 정서 발달에서 안전 애착(Secure Attachment)은 핵심 개념입니다. 안전 애착이란 양육자가 아이의 정서적 신호에 일관되게 반응해줄 때 형성되는 심리적 안정 기반으로, 이후 아이가 타인과 건강한 관계를 맺는 데 토대가 됩니다. 수경과 이정 사이에는 처음부터 이 안전 애착이 형성될 기회가 없었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어른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했습니다. 비싼 학원이나 좋은 환경이 아니라, 아이가 이야기를 꺼냈을 때 쉽게 판단하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는 태도입니다. "그 나이에는 다 그래"라는 말이 어른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 해도, 아이에게는 자신의 고통이 별것 아닌 일로 취급된다는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타인 딸의 졸업식에는 다정하게 참석하면서 자기 딸의 졸업식은 함께하지 않는 수경의 이중성. 이 장면을 보면서 제가 느낀 건 분노보다는 슬픔이었습니다. 이정이 끝내 원했던 건 단 한 번의 진심 어린 사과였는데, 그것조차 끝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영화는 어설픈 화해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정신병자 밑에서 자랐기에 나 또한 정신병자가 되었다'는 이정의 말은 세대 간 전이(Intergenerational Transmission)를 건드립니다. 세대 간 전이란 부모의 정서적 상처나 역기능적 행동 패턴이 자녀에게 그대로 이어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정은 그 사슬이 자기 안에도 있다는 걸 인식하고, 그 인식 자체가 하나의 균열이 됩니다. 제 경험상 그 균열이 작아 보여도, 그게 시작점이 됩니다.

    아이가 언제까지나 혼자 날갯짓하며 버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벌새처럼 작은 몸으로 매일 날갯짓하는 것은 강인함이기도 하지만, 그 아이가 쉬어갈 곳이 필요하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아이의 강인함을 칭찬하는 것만큼이나 그렇게 힘겹게 버티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약: 아이에게 필요한 건 완벽한 해결사가 아니라 안전 애착의 기반이 되어주는 어른이며, 세대 간 전이를 인식하는 것 자체가 변화의 시작점이 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는 어떤 영화인가요?

    A. 엄마 수경과 딸 이정의 기형적인 모녀 관계를 다룬 한국 영화입니다. 정서적 방임과 반복적인 폭력, 자기 합리화로 일관하는 엄마와 그 속에서 상처받은 딸의 이야기를 어설픈 화해 없이 적나라하게 조명합니다. 어떤 관계가 회복 불가능한 지점에 이를 수 있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Q. 영화 속 수경의 행동이 아동학대에 해당하나요?

    A. 신체적 폭력뿐 아니라 정서적 방임, 딸의 의사를 무시한 합의서 서명, 반복적인 폭언과 책임 전가까지 모두 아동학대의 범주에 포함됩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아동학대를 신체적 행위에 국한하지 않고 정서적 착취와 방임까지 포함해 정의하고 있습니다. 수경의 행동은 그 기준에서 여러 항목에 해당합니다.

     

    Q. 이 영화가 벌새와 비슷하다는 말이 있는데, 어떤 점이 비슷한가요?

    A. 두 작품 모두 가족 안에서 정서적으로 고립된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맥락이 닿아 있습니다. 하지만 벌새가 작은 위로의 가능성을 섬세하게 담아낸다면,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는 화해 없이 끝나는 관계를 더 직접적으로 보여줍니다. 두 영화를 연이어 보면 아이의 외로움이라는 주제를 다른 결로 느낄 수 있습니다.

     

    Q. 정서적 방임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은 얼마나 심각한가요?

    A. 연구에 따르면 정서적 방임은 신체적 학대보다 장기적인 정서 발달에 더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안전 애착이 형성되지 않으면 아이는 이후 관계에서도 지속적으로 불안을 경험하거나 자기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패턴을 보일 수 있습니다. 이정이 '나 또한 정신병자가 되었다'고 말하는 장면은 이 영향이 어떻게 내면화되는지를 보여줍니다.

     

    결론

    영화를 보고 나서 제가 오래 안고 있었던 질문은 이겁니다. 우리는 아이가 잘 지내는지 확인하면서 정작 아이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는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요? 학교에 잘 다니고 밥을 잘 먹는다고 해서 그 아이의 내면이 안전한 것은 아닙니다.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는 성장통이라는 말로 가볍게 덮어서는 안 되는 상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모든 고통이 성장에 필요한 건 아닙니다. 어떤 상처는 오래 남고, 어떤 슬픔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덜 자란 것도 아닙니다. 제 경험상 이 영화는 한 번 보고 끝나는 작품이 아니라, 한참 후에 다시 생각나는 종류의 영화입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건 혼자 모든 상처를 이겨내라는 응원이 아니라, 힘들 때 기대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관계입니다. 그 한 문장이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오래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JTGIr-_z6Z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