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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걸 (토마스 안경, 애도, 성장)

annabb 2026. 10. 22. 10:38

목차


    영화 《마이 걸》을 다시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건 토마스의 안경이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베이다가 그 안경을 찾으며 오열하는 장면 — 저는 그 순간이 단순한 슬픔의 표현이 아니라, 한 아이가 죽음이라는 현실과 정면으로 부딪히는 순간이라고 느꼈습니다. 상실이 어떻게 사람을 바꾸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이에게 진짜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이 영화는 조용하고 묵직하게 보여줍니다.

    1991년 영화 마이 걸(My Girl)에서 어린 소녀가 정면을 바라보는 클로즈업 장면



    토마스의 안경이 그토록 슬펐던 이유

    장례식에서 고인의 물건 하나가 유난히 눈에 밟힌 경험이 있으신지요. 저는 《마이 걸》의 그 장면을 처음 봤을 때, 베이다가 왜 하필 안경에 집착하는지 한참 생각했습니다.

    안경은 토마스가 살아 있을 때 늘 쓰고 있던 물건입니다. 그것이 없다는 사실은 단순히 물건이 빠진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알던 토마스의 모습이 사라졌다는 걸 눈앞에서 확인하는 일이었을 겁니다. 제가 이 장면을 직접 보면서 느낀 건, 베이다의 오열이 죽음 자체보다 '이 사람이 이제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서 온다는 점이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애도 반응(grief response)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애도 반응이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 나타나는 감정적·행동적·신체적 반응 전반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아이들의 경우 성인과 달리 특정 물건이나 공간에 집착하는 방식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베이다가 안경을 찾고, 나중에 토마스와 함께했던 호숫가를 다시 찾아가는 행동은 모두 이 맥락에서 읽힙니다.

    제가 이 영화를 통해 가장 오래 붙잡았던 질문은 이겁니다. 애도란 과연 잊어가는 과정일까요, 아니면 그 사람을 다른 방식으로 간직하는 과정일까요. 저는 후자 쪽이라고 생각합니다. 베이다가 호숫가에서 마지막 작별을 고하는 장면은 '잊겠다'는 결심이 아니라, 토마스와 나눴던 시간을 자신 안에 들여놓는 행위처럼 보였습니다.

    요약: 토마스의 안경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베이다가 애도 반응을 통해 죽음의 현실을 직면하는 상징적 매개였습니다.

     

    베이다의 불안이 '예민함'으로만 보이지 않았던 이유

    혹시 어릴 때 이유 없이 자꾸 아프다고 느낀 적이 있으셨나요. 저는 베이다가 집에 시신이 들어올 때마다 병원을 찾는다는 설정을 처음 접했을 때, '예민한 아이'라는 말로 쉽게 정리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베이다는 태어나는 과정에서 엄마를 잃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설정을 가진 캐릭터는 흔히 '강한 아이' 혹은 '조숙한 아이'로 그려지는데, 《마이 걸》은 그 반대입니다. 베이다는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자랐지만, 그렇다고 죽음을 태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오히려 더 두려워합니다.

    발달심리학(developmental psychology)에서는 이를 자기중심적 인과 귀인(egocentric causal attribution)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쉽게 말해, 아이들은 자신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는 뜻입니다. 베이다가 "내가 태어났기 때문에 엄마가 죽었다"는 죄책감을 품고 있다는 점이 바로 이 맥락에서 이해됩니다. 출처: 미국심리학회(APA) — 아동의 슬픔과 상실

    저는 이 부분을 보면서 어른들이 아이의 슬픔을 다룰 때 가장 놓치기 쉬운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습니다. "괜찮아"나 "이제 새 출발이야" 같은 말보다, 아이가 그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먼저 확인하는 일이 훨씬 중요할 수 있습니다.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 한마디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에게 부당하게 씌운 책임을 내려놓게 하는 결정적인 설명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빠 해리가 셀리에게 아내의 죽음을 털어놓고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과정도, 베이다의 입장에서는 단순한 '새 사랑'으로 느껴지지 않았을 겁니다. 자신이 기억하지도 못하는 엄마의 자리가 채워지는 것에 대한 불안, 그리고 아빠마저 자신에게서 멀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함께 있었을 테니까요. 솔직히 이 부분은 영화를 보는 내내 제가 가장 마음에 걸렸던 지점이었습니다.

    • 베이다의 신체 증상: 죽음에 대한 공포를 언어화하지 못해 몸으로 표현하는 방식
    • 아빠 해리와의 갈등: 상실의 시간표가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서로 다르게 흐른다는 현실
    • 죄책감의 뿌리: 자기중심적 인과 귀인이 아이에게 남긴 잘못된 책임감
    요약: 베이다의 불안과 신체 증상은 죽음을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아이가 선택한 또 다른 방식의 애도였습니다.

     

    성장에 반드시 커다란 상실이 필요한 걸까요

    《마이 걸》을 '눈물 짜내는 성장영화'라고 소개하는 글들을 보면서 저는 항상 조금 불편했습니다. 토마스의 죽음이 베이다를 성숙하게 했다는 식의 해석이 반복될 때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르게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실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이라는 심리학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상실 후 성장이란 극심한 상실이나 트라우마를 경험한 뒤 그 과정을 통해 심리적으로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는 현상을 말합니다. 중요한 건, 이 개념이 '상실이 성장에 필요하다'는 주장과는 전혀 다르다는 점입니다. 상실 이후에 성장이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과, 성장을 위해 상실이 있어야 한다는 논리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출처: NCBI — 상실 후 성장 연구(Tedeschi & Calhoun)

    토마스의 죽음을 베이다의 성장을 위한 아름다운 희생처럼 읽는다면, 한 아이의 생명과 그 죽음이 남긴 고통이 지나치게 낭만화될 수 있습니다. 저는 그 해석이 불편했고, 이 영화를 두 번 세 번 다시 볼수록 그 생각이 더 강해졌습니다.

    그렇다면 베이다가 마지막에 빅슬러 선생님의 작문 수업에 다시 참여하는 장면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저는 이 장면을 치유의 완성이 아니라, 시작의 신호로 봤습니다. 내러티브 치료(narrative therapy)라는 접근법이 있는데, 쉽게 말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로 만들고 언어로 표현하는 과정 자체가 회복의 한 방법이 된다는 관점입니다. 베이다에게 글쓰기는 토마스를 잊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와 함께했던 시간과 지금 자신의 슬픔에 이름을 붙이려는 시도였을 겁니다.

    가족이라는 단위 안에서도 슬픔의 속도는 다릅니다. 해리가 셀리와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준비가 됐다고 해서 베이다도 같은 시간표 위에 있는 건 아닙니다. 베이다가 결국 셀리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은 억지로 맞춘 화해가 아니라, 서로 다른 상실의 경험을 조금씩 나누며 이뤄진 결과라고 저는 느꼈습니다.

    요약: 성장은 상실의 결과물이 아니라, 상실을 겪은 뒤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쓰는 과정에서 찾아오는 것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마이 걸에서 토마스는 왜 죽은 건가요?

    A. 토마스는 벌독 알레르기(anaphylaxis)가 심했는데, 베이다가 잃어버린 반지를 찾아주려 혼자 숲으로 갔다가 벌떼에 쏘이면서 과민성 쇼크로 사망합니다. 베이다에 대한 순수한 마음이 불러온 비극이라는 점에서, 이 죽음은 관객에게 더 크게 다가옵니다.

     

    Q. 베이다가 병원을 자주 가는 이유가 뭔가요?

    A. 장례업을 하는 집에서 자라며 죽음을 일상적으로 접한 베이다는, 집에 새 시신이 들어올 때마다 자신도 아프다는 강박적 불안을 느낍니다. 이는 단순한 예민함이 아니라, 엄마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과 공포가 몸으로 표출되는 방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Q. 마이 걸 결말에서 베이다가 작문 수업에 나간 건 어떤 의미인가요?

    A. 베이다가 빅슬러 선생님의 작문 수업에 다시 참여하는 장면은 치유의 완성이라기보다 회복의 출발점으로 읽힙니다. 자신의 상실과 슬픔을 언어로 표현하는 과정이 곧 자신의 경험을 이해하고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첫 걸음이 되기 때문입니다.

     

    Q. 아이에게 친구의 죽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요?

    A. 발달심리학 전문가들은 아이가 죽음을 자기 탓으로 해석하지 않도록 명확하게 설명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에게 씌운 부당한 책임을 내려놓게 돕는 결정적인 설명이 될 수 있습니다.

     

    결론

    《마이 걸》은 저에게 '죽음을 통해 어른이 되는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에도 그 관계의 의미를 간직하면서 자신의 삶을 계속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이에게든 어른에게든 슬퍼할 시간과 이해받을 권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조용히 보여주는 이야기였습니다.

    토마스의 안경이 여전히 머릿속에 남아 있다면, 한 번쯤 영화를 다시 꺼내 보시길 권합니다. 처음 봤을 때와는 다른 장면에서 멈추게 될 수도 있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J2zrtbtxuN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