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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함무라비 (첫사랑 재회, 정의관 충돌, 판사의 공감)

annabb 2026. 10. 1. 10:34

목차


    고아라 김명수 성동일이 판사로 등장하는 JTBC 법정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 포스터

    솔직히 저는 오랫동안 '공감을 잘하는 사람이 좋은 판단을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미스 함무라비〉를 보면서 그 믿음이 조금씩 흔들렸습니다. 감정에 끌려가는 판단과 감정을 이해하는 판단은 전혀 다른 것이었고, 그 차이를 드라마가 꽤 날카롭게 짚어냈습니다.

     

    12년 만의 재회, 그리고 어색한 원칙

    박차오름과 임바른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신임 판사로 나란히 첫 출근하는 장면은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12년 9개월 10일 만에 다시 만난 학창 시절 첫사랑 사이인데, 바른은 공적 공간에서 사적 친분을 철저히 배제하는 원칙을 앞세웁니다.

    처음에는 그게 너무 차갑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봤는데,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다가 같은 직장에서 마주친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건 생각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그런데 계속 보다 보니 바른의 태도가 단순한 냉정함이 아니라 법관으로서의 자기 규율에 가깝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두 신임 판사가 배치된 재판부를 이끄는 한세상 부장판사는 20년 경력의 베테랑입니다. 그는 학벌보다 재판의 본질을 중시하는 인물로, 오름이 첫 출근날 지하철 성추행범을 잡은 영상이 퍼지자 법관의 권위와 보수적 관점을 앞세워 엄격하게 질책합니다. 일반적으로 드라마에서 베테랑 상사는 신인을 억누르는 악역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은데, 제 경험상 한세상 같은 인물은 현실 조직에도 꽤 있습니다. 틀린 말을 하는 건 아닌데, 시대가 바뀐 걸 인정하기 싫은 사람이죠.

    여기서 사법권(judicial power)이라는 개념이 중요하게 등장합니다. 사법권이란 법원이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여 분쟁을 해결하는 국가 권력을 말합니다. 드라마는 이 사법권이 권위의 외피를 두르고 있을 때 오히려 사람을 소외시킬 수 있다는 점을 오름의 행동을 통해 보여줍니다.

    • 임바른: 법원 안에서는 사적 관계를 배제하는 원칙주의자
    • 박차오름: 규정보다 사람의 사연에 먼저 반응하는 공감형 판사
    • 한세상: 권위와 관행을 통해 법관의 무게를 강조하는 베테랑
    요약: 12년 만의 재회라는 극적 설정 뒤에, 드라마는 법관의 원칙과 인간적 감정이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조용히 보여줍니다.

     

    정의관 충돌, 그런데 둘 다 반만 맞았습니다

    법원 앞에서 시위하는 할머니의 사연에 오름이 깊이 공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바른은 그런 오름에게 증거와 법리에 입각한 냉정한 판단이 판사의 본분이라고 맞섭니다. 처음에는 오름이 옳고 바른이 너무 차갑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오름의 과도한 공감이 오히려 원치 않는 오해와 피해를 낳는 장면들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제가 직접 겪어봤는데, 직장 생활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자주 생깁니다. 규칙대로 처리하면 너무 매정한 것 같고, 사정을 봐주자니 같은 기준을 적용받는 다른 사람이 마음에 걸립니다. 그럴 때마다 '원칙을 지키는 것'과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게 함께 가지 않는다는 걸 다시 느낍니다.

    드라마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직장 내 성희롱 해고 무효 소송 장면이었습니다. 오름과 바른은 회사가 사건의 진실을 은폐하려 한다는 정황을 포착하고 재조사에 나섭니다. 피해자가 오랫동안 참아온 진실이 드러나고, 부장의 권력형 성희롱 구조가 밝혀집니다. 여기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증거능력(admissibility of evidence)입니다. 증거능력이란 법정에서 해당 증거가 사실 인정의 자료로 사용될 수 있는 자격을 말하는데, 드라마는 이 증거능력의 한계 안에서 진실을 어떻게 끄집어낼 것인가를 두 판사의 협력으로 보여줍니다.

    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에 따르면 남녀고용평등법은 직장 내 성희롱 발생 시 사업주의 조치 의무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드라마는 이 법 조항이 현실에서 얼마나 쉽게 무력화될 수 있는지를 구체적인 사건으로 보여주며, 단순히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법정 드라마는 판사를 정의의 화신처럼 그리는 경우가 많은데, 제 경험상 이 드라마는 그 반대였습니다. 판사도 조직의 눈치를 보고, 오래된 관행에 치입니다. 그 솔직함이 오히려 더 설득력 있게 느껴졌습니다.

    요약: 공감과 원칙은 서로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드라마는 어느 쪽도 단독으로는 완전한 판단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판사의 공감, 어디까지가 적당한가

    성공충 부장판사의 인권 침해와 배석 판사들의 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름이 연판장을 돌리는 장면은 꽤 통쾌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열린 전체 판사 회의에서 오름이 "누군가를 돕는 보람으로 일할 수 있는 법원을 만들자"고 연설하는 장면은 솔직히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제가 경계하면서 본 부분이기도 합니다. 차오름의 행동이 언제나 옳은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흐름은 조금 과했습니다. 판사는 상담자가 아니라 양쪽의 주장과 증거를 검토해 판단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공감 능력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판단을 대체해서는 곤란합니다.

    국회의원 강요한의 '잊혀질 권리' 소송 에피소드는 이 드라마에서 제가 가장 좋아한 부분입니다. 잊혀질 권리(right to be forgotten)란 개인이 자신과 관련된 정보를 삭제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 권리로, 쉽게 말해 디지털 기록에서 과거를 지울 수 있는 법적 권리입니다. 사건의 내막은 단순한 알 권리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아내를 위해 첫사랑의 흔적을 지우고 싶어 했던 남편의 슬픈 의무가 배경에 있었고, 바른은 이 사건을 해결하며 오름에 대한 솔직한 감정을 고백합니다.

    출처: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 따르면 잊혀질 권리와 관련된 개인정보 삭제 요구권은 국내 개인정보 보호법 제36조에도 명시되어 있습니다. 드라마가 이 조항을 소재로 삼으면서 법적 쟁점을 감정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엮어낸 방식은 꽤 영리했습니다.

    모든 조직 문제가 몇몇 용기 있는 사람들의 행동으로 비교적 빠르게 해결되는 전개는 드라마적 과장이 느껴졌습니다. 현실의 조직 문화는 훨씬 느리고 복잡하게 움직입니다. 그럼에도 '좋은 판사란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어렵지 않게 던진다는 점은 분명히 좋았습니다.

    요약: 공감은 좋은 판단의 출발점이지만 종착점이 될 수 없으며, 드라마는 그 경계를 오름과 바른의 충돌로 끊임없이 묻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미스 함무라비는 실제 법 지식을 많이 알아야 이해할 수 있나요?

    A. 그렇지 않습니다. 증거능력이나 잊혀질 권리 같은 법률 개념이 등장하지만, 드라마 안에서 상황을 통해 충분히 설명됩니다. 제 경험상 법 지식이 전혀 없어도 인물들의 갈등을 따라가는 데 전혀 무리가 없었습니다.

     

    Q. 박차오름과 임바른 중 누가 더 좋은 판사로 그려지나요?

    A. 일반적으로 공감 능력이 뛰어난 오름이 주인공이라 더 긍정적으로 그려진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제 경험상 드라마는 어느 한쪽을 정답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가며 함께 성장하는 구조가 이 드라마의 핵심입니다.

     

    Q. 직장 내 성희롱 에피소드는 현실적으로 묘사되는 편인가요?

    A. 사건 해결 속도는 드라마적 과장이 있지만, 피해자가 오랫동안 침묵할 수밖에 없는 권력 구조와 조직의 은폐 시도는 꽤 현실적으로 묘사됩니다. 남녀고용평등법상 사업주의 조치 의무가 실제로 어떻게 무력화되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단순한 감동 서사에 그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Q. 잊혀질 권리 소송 에피소드는 왜 인상적인가요?

    A. 법적 쟁점과 인간적 감정이 가장 자연스럽게 엮인 에피소드이기 때문입니다. 잊혀질 권리라는 개념이 단순한 정보 삭제 문제가 아니라,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선택으로 그려지면서 법이 얼마나 복잡한 인간의 맥락 위에 놓여 있는지를 느끼게 해줍니다.

     

    결론

    〈미스 함무라비〉를 다 보고 나서 제가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좋은 판단은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마음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 아니라, 두 가지 사이에서 끊임없이 불편해하는 과정입니다. 누군가의 사정을 충분히 듣되 그것만으로 판단하지 않는 것, 원칙을 지키되 그 원칙 때문에 상처받는 사람이 없는지 돌아보는 것. 드라마가 보여주는 정의는 오히려 그 애매하고 어려운 중간 어딘가에 있다고 느꼈습니다.

    법정 드라마에 관심이 있다면 이 드라마를 권하고 싶습니다. 법 지식보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에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 다만 오름의 행동을 그대로 정답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바른의 반박도 함께 곱씹으며 보면 훨씬 더 많은 게 남는 드라마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fiJyDn9OrM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