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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누룩 (막걸리 집착, 누룩 의존, 치유의 의미)

annabb 2026. 9. 30. 23:32

목차


    막걸리와 사라진 누룩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그린 장동윤 감독 영화 누룩 포스터

    솔직히 처음 〈누룩〉 이야기를 들었을 때, 18살 소녀가 화장품 공병에 막걸리를 담아 학교에 가지고 다닌다는 설정이 그냥 기이한 캐릭터 설정쯤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이 영화는 막걸리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배우 장동윤이 감독으로 데뷔한 이 작품은 팬데믹 시기 '막걸리가 병을 치료한다'는 발상에서 출발해, 사람이 고통을 버티기 위해 무언가에 의존하게 되는 과정을 꽤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오래 머문 질문은 하나였습니다. 그것이 치유라면, 사라졌을 때 삶이 무너지는 것도 치유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막걸리 집착, 처음엔 저도 오빠 편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술에 집착하는 청소년 캐릭터가 나오면 그것은 곧 '비행'이나 '중독'의 신호로 읽힙니다. 제가 처음 다슬을 봤을 때도 그랬습니다. 화장품 공병에 막걸리를 숨겨 학교에 가지고 다니고, 주변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으며 마시는 모습은 어떤 각도에서 봐도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빠가 끊임없이 경계하는 태도에 충분히 공감했습니다. 오빠 눈에는 동생이 알코올 의존(alcohol dependence), 즉 알코올에 대한 심리적·신체적 의존 상태로 빠져드는 것처럼 보였을 테니까요. 여기서 알코올 의존이란 단순히 술을 좋아하는 것과 달리, 술이 없으면 일상 기능 자체가 무너지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다슬의 행동은 겉으로 보면 그 경계선 어딘가에 걸쳐 있었습니다.

    반면 아버지는 막걸리를 '약'으로 여기며 태평했습니다. 사실 아버지가 양조장을 인수할 때 빚까지 지면서 '이 누룩으로 막걸리를 만드는 것'을 조건으로 삼았다는 설정을 알고 나면, 그 태평함이 무지가 아니라 어떤 믿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짐작하게 됩니다. 같은 행동, 완전히 다른 해석. 이 간극이 이 영화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부분이었습니다.

    다슬 주변의 불청객들, 말을 못 한 채 오직 막걸리만을 가리키며 경로당에 나타나는 사람들에게 다슬이 기꺼이 막걸리를 나눠주는 장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오빠 입장에서는 동생이 술 냄새를 풍기며 동네를 돌아다니는 상황이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저도 제 경험상, 가족 중 누군가의 행동이 외부 시선을 끌 때 그 심리적 피로가 얼마나 큰지 알기 때문에 오빠의 좌절감이 과장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 다슬: 막걸리를 몸을 지켜주는 '치료제'로 인식, 나눔의 행위로 반복
    • 아버지: 누룩과 막걸리에 대한 미스터리한 믿음을 전제로 태평한 태도 유지
    • 오빠: 알코올 의존 위험 신호로 읽으며 가족 내 긴장을 혼자 감당
    요약: 다슬의 막걸리 집착은 보는 사람에 따라 치유로도, 중독으로도 읽히며, 영화는 처음부터 그 해석의 간극을 의도적으로 열어둡니다.

     

    누룩이 사라지자 무너진 건 몸이 아니라 믿음이었습니다

    누룩(麴)이란 곡물에 곰팡이균과 효모를 번식시켜 만든 발효제로, 막걸리를 비롯한 전통주를 빚는 데 핵심이 되는 재료입니다. 쉽게 말해 막걸리의 맛과 발효 과정을 결정짓는 심장 같은 존재입니다. 그 누룩이 양조장에서 사라지자, 다슬이 빚은 막걸리의 맛이 변했고, 다슬은 환청과 환각을 동반한 급격한 신체·정신적 쇠락을 맞이합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가장 먼저 떠올린 건 질병 불안(illness anxiety), 즉 몸에 이상이 생겼을 때 원인을 알 수 없다는 불확실성 자체가 증상보다 더 큰 공포를 만들어내는 현상이었습니다. 여기서 질병 불안이란 실제 신체 증상보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믿음과 공포가 심리를 지배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저도 몸이 평소와 조금만 달라도 원인을 찾기 위해 검색을 반복하고, '혹시 이것 때문인가?' 하며 이유를 억지로 만들어본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별것 아닌 증상인데도 원인 모를 불안이 생각을 꼬리 물고 키워가는 그 감각, 다슬의 붕괴가 그것과 닮아 보였습니다.

    다슬이 학교 수업 도중 쓰러지며 "누룩을 찾아야 한다"라고 절규하는 장면은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엔 단순한 발작 장면으로 지나칠 뻔했는데, 이후 맥락과 함께 다시 보면 그 절규는 재료를 잃어서가 아니라 자신을 정상으로 유지해 준다고 믿었던 안전장치를 잃었다는 공포였습니다. 출처: WHO 정신건강 팩트시트에 따르면, 특정 대상에 대한 강박적 의존과 그 대상의 부재가 극단적 행동을 유발하는 메커니즘은 임상적으로도 실재하는 현상입니다.

    결국 다슬은 누룩을 되찾기 위해 대형 양조장에 침입해 훔쳐오는 선택을 합니다. 이 행동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를 떠나, 사람이 절박해지면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선택까지 내리게 된다는 점, 제 경험상 그 심리는 충분히 이해가 됐습니다.

    요약: 누룩의 소실은 단순한 재료의 부재가 아니라, 다슬이 자신의 생존을 위탁했던 믿음 자체의 붕괴였습니다.

     

    치유의 의미, 의존이 삶을 지배할 때 그것은 여전히 치유인가

    일반적으로 '치유'라고 하면 병이 낫는 과정, 또는 고통이 줄어드는 방향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제가 〈누룩〉을 보면서 계속 불편하게 느꼈던 것은, 다슬에게 막걸리가 치유의 수단으로 작동하는 동시에 그것 없이는 존재 자체가 무너지는 구조였다는 점입니다. 이 두 가지가 공존할 때, 그것을 여전히 치유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정신건강 임상에서는 이런 상태를 심리적 의존(psychological dependence)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심리적 의존이란 특정 물질이나 행위가 없으면 불안, 공허, 기능 저하가 발생하는 상태를 의미하며, 신체적 금단 증상 없이도 형성될 수 있습니다. 출처: 미국 국립알코올남용·중독연구소(NIAAA)는 알코올 사용 장애(AUD, Alcohol Use Disorder)의 기준 중 하나로 "음주를 줄이거나 멈추려 해도 실패하는 경험"을 제시합니다. 다슬의 행동은 이 기준과 겹치는 지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가 원하는 해석이 단순히 '다슬은 알코올에 중독된 청소년'이라는 결론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오래 머문 지점은 이것이었습니다. 누룩은 실제 발효 재료인 동시에 상징으로도 읽힙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가족이, 종교가, 일이, 특정 루틴이 누룩의 자리에 놓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것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사라졌을 때 '나는 이것 없이는 괜찮을 수 없다'라고 믿게 되는 순간입니다.

    결국 저는 〈누룩〉을 '막걸리가 사람을 치료할 수 있는가'를 묻는 영화라기보다 '사람은 무엇을 믿어야 고통을 견딜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믿음이 의존이 되는 순간 우리는 무엇을 잃는가'를 묻는 영화로 읽었습니다. 장동윤 감독의 데뷔작이 이 질문을 18살 소녀의 막걸리 이야기로 풀어냈다는 점이, 제가 이 작품에서 가장 놀란 부분이었습니다.

    요약: 치유와 의존 사이의 경계를 흐리는 것이 〈누룩〉의 핵심이며, 누룩은 사람이 고통을 견디기 위해 붙잡는 모든 믿음의 은유로 작동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누룩〉은 실제로 막걸리가 치료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는 영화인가요?

    A. 영화 자체는 막걸리의 의학적 효능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팬데믹 시기 '막걸리가 병을 낫게 한다'는 믿음에서 출발한 설정이지만, 영화가 실제로 탐구하는 것은 인간이 고통을 견디기 위해 무언가를 믿고 의존하게 되는 심리입니다. 막걸리는 그 믿음의 매개체로 사용된 소재에 가깝습니다.

     

    Q. 다슬의 행동은 알코올 중독으로 봐야 하나요?

    A. 일반적으로 알코올 의존이나 중독의 기준에 비추면 다슬의 행동과 겹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그것을 단순한 중독 서사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엔, 영화가 의도적으로 그 경계를 흐리면서 '치유라는 이름의 의존'이 어떻게 사람을 지배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해석하는 편이 더 적합합니다.

     

    Q. 누룩이 영화에서 왜 그렇게 중요하게 다뤄지나요?

    A. 누룩은 막걸리 발효의 핵심 재료인 동시에 영화 안에서 상징적 의미를 갖습니다. 다슬의 아버지가 양조장을 인수할 때 이 누룩으로 막걸리를 빚는 것을 조건으로 삼았을 만큼, 누룩에는 단순한 재료 이상의 미스터리한 사연이 담겨 있습니다. 영화는 이 누룩을 사람이 삶을 버티기 위해 붙잡는 믿음의 은유로 사용합니다.

     

    Q. 장동윤 감독 데뷔작으로서 〈누룩〉의 특징은 뭔가요?

    A. 배우 장동윤이 연출로 데뷔한 작품으로, 18세 소녀의 성장기처럼 시작해 후반부로 갈수록 미스터리와 반전이 더해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팬데믹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인간의 고통과 치유에 관한 철학적 질문으로 연결했다는 점이 데뷔작으로서 눈에 띄는 지점입니다.

     

    결론

    〈누룩〉을 다 보고 나서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한 건 다슬의 집착이 아니라, 그 집착이 어디서 시작됐는가였습니다. 막걸리가 자신을 지켜준다는 믿음, 누룩이 없으면 자신이 무너진다는 확신, 이 두 가지는 처음엔 그녀를 살게 하는 힘처럼 보였지만 결국 그녀를 가장 위험한 선택으로 이끌었습니다. 치유라는 이름이 붙어 있어도 그것이 삶을 지배하기 시작하면 더 이상 같은 이름으로 부르기 어렵다는 것, 이 영화가 남긴 가장 무거운 질문이었습니다.

    정리하면, 이 영화는 막걸리나 누룩 그 자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람이 고통을 버티기 위해 무언가를 믿고, 그 믿음에 기대고, 그것이 사라졌을 때 무너지는 과정을 꽤 솔직하게 담아낸 작품입니다. 아직 〈누룩〉을 보지 않으셨다면, 막걸리 이야기라는 첫인상에 속지 마시고 끝까지 보시길 권합니다. 후반부의 반전과 여운은 생각보다 오래 남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yLarauMgl9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