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2월 개봉한 영화 <윗집사람들> 은 우리 모두의 일상 속 가장 가까운 갈등이자 민감한 문제인 이웃과의 관계, 그중에서도 ‘층간소음’을 소재로 한 현실 밀착 심리 드라마입니다. 아파트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의 소통 부재, 오해, 그리고 쌓여가는 감정의 균열이 어떻게 일상 속 파국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세밀하게 보여주는 이 작품은, 무겁지만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로 관객을 사로잡습니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줄거리: 이웃이라는 경계
영화는 도시 외곽의 한 오래된 아파트 단지를 배경으로 시작됩니다. 주인공 정민수와 이연주 부부는 그 아파트에 8년째 거주 중입니다. 조용하고 익숙한 생활 속에서 두 사람은 아이 없이 단둘이 평범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운 가족이 윗집으로 이사 오면서 그들의 일상이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이사 온 윗집은 네 살짜리 아들을 둔 김대진, 최수정 부부. 처음엔 인사도 나누고, 상호 간 예의를 지키려는 모습이 있었지만, 아이의 활동성이 점차 문제가 됩니다. 낮에는 발을 구르며 뛰어다니고, 밤늦게까지 가구를 끄는 소리, 의문의 진동음 등 일상 속 작은 소음들이 쌓이기 시작합니다. 민수는 처음에는 참고 넘깁니다. “아이니까 이해하자”라는 마음으로 한두 번은 웃어넘기지만, 반복되는 소음에 점점 예민해집니다. 연주는 민수가 예민해질수록 오히려 더욱 조심하려 하고, 윗집과의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 중재하려 합니다. 그러나 상황은 악화됩니다. 윗집에서 사과 한 마디 없이 일상을 이어가는 모습에 민수는 점차 불신과 분노를 느끼고, 직접 항의를 하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문 앞에서 결국 말을 돌리고 내려오고, 대신 관리실에 민원을 넣는 소극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처리합니다. 연주는 민수의 감정 변화에 불안을 느끼고, 두 사람의 부부 관계에도 균열이 생깁니다. 이웃 간의 관계는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윗집에서는 ‘이 정도 소음은 일상’이라고 주장하고, 아랫집에서는 ‘생활이 파괴될 정도’라며 더는 참을 수 없어합니다. 영화는 이런 상황을 어느 한쪽이 옳다고 단정하지 않고, 각 인물의 시선으로 번갈아 보여줍니다.
고조되는 긴장감, 감정의 끝에서 마주하다
영화는 격한 언쟁이나 큰 사건 없이도, 일상 속 긴장감을 서서히 조여옵니다. 작은 소리 하나에도 민수는 밤잠을 설치고, 연주는 혼자 눈물을 흘립니다. 동시에 윗집의 수정은 아이를 키우는 고충 속에서 자신도 지쳐가고, 남편 대진은 층간소음에 민감한 아랫집 부부를 이해하지 못해 무시합니다. 양쪽 모두, 서로가 무엇을 느끼는지 정확히 모르면서도 각자의 고통에만 집중합니다. 이 지점에서 감독은 묘한 연민과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인가? 영화는 단순히 피해와 가해의 구조로 사건을 규정하지 않습니다. 극의 클라이맥스는 연말 저녁, 아랫집 부부가 윗집 가족을 초대하며 벌어집니다.‘대화로 풀자’는 명목으로 열린 식사 자리는,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은 팽팽히 긴장된 상태입니다. 아이는 천진난만하게 뛰어다니고, 수정은 조심스럽게 웃으며 말하지만, 민수의 눈빛은 이미 냉담합니다. 결국, 억눌렀던 감정은 한순간에 터지고, 테이블 위로 쌓여있던 분노, 무시, 오해, 상처들이 폭발하듯 드러나게 됩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영화는 갈등이 터진 이후에도 명확한 결말을 주지 않습니다. 사과도, 용서도, 해결도 없습니다. 남겨진 건 각자의 입장에서 ‘내가 틀렸나?’라는 불편한 질문뿐입니다.
인간의 본질을 묻는 심리 드라마
<윗집사람들> 은 단지 이웃 간의 갈등만을 말하는 영화가 아닙니다. 이 작품은 인간이 가진 ‘이해받고 싶지만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 ‘분노를 참다가 결국 터져 나오는 심리’ 등 현실적인 감정선을 정교하게 그려냅니다. 특히 ‘말하지 않음’이 어떤 파괴를 가져오는지를 보여주며, 소통 부재가 가장 무서운 폭력임을 강조합니다. 극 중 어떤 인물도 ‘악인’이 아닙니다. 모두 각자의 사정과 감정이 있고, 어쩌면 선의로 시작한 행동이 상대방에게는 날카로운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영화는 관객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윗집 사람인가요, 아랫집 사람인가요?" 그리고 "당신은 대화를 선택하나요, 침묵을 선택하나요?"
결론: 말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윗집사람들>은 결코 자극적이지 않지만, 그 무엇보다 현실적입니다. 실제로 층간소음으로 인한 갈등과 사건은 현대 사회에서 매우 민감한 문제이며, 이 영화는 그 갈등의 본질이 ‘소음’이 아닌 ‘사람’에 있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공동주택에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이 영화는 거울이 됩니다. 이웃과의 관계, 가족 간의 대화, 나 자신의 감정 조절까지 <윗집사람들> 은 단지 갈등의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라, 그 안에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묻는 작품입니다. 단 한 번도 얼굴을 마주한 적 없는 옆집, 윗집 사람들과 살아가는 우리. 그 관계를 지켜내기 위한 첫걸음은, 어쩌면 "말을 꺼내는 용기"일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