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보고 나서 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Harry Styles의 〈Sign of the Times〉를 다시 찾아 재생한 것이었습니다. 예전에도 여러 번 들었던 노래인데, 영화 한 편이 끝나고 들으니 완전히 다른 곡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경험이 신기해서 이 글을 씁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보고 나서야 들리기 시작한 가사
영화를 보기 전에도 〈Sign of the Times〉는 제게 익숙한 노래였습니다. 처음 들었을 때는 후반부로 갈수록 웅장하게 쌓이는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가 좋았습니다. 여기서 사운드스케이프란 음악적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전반적인 소리 풍경, 즉 청각적 공간감을 의미합니다. 그 감각이 좋아서 들었지 가사 한 줄 한 줄을 들여다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끝나고 이어폰을 끼고 이 노래를 틀었을 때, 처음으로 가사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울음을 멈추라는 말,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반복, 끝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감각, 그리고 먼 곳 어딘가에서 다시 만날 수도 있다는 희망. 영화의 감정이 아직 몸에 남아 있는 상태에서 들으니 이 모든 이미지가 우주에 홀로 남겨진 사람의 이야기처럼 겹쳐 보였습니다.
특히 "대기를 뚫고 나간다(breaking through the atmosphere)"는 이미지가 나오는 부분에서는 자연스럽게 우주를 향해 떠나는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해 봤는데, 이런 감각적 연상(associative imagery)은 한 번 생기면 좀처럼 떼어내기가 어렵습니다. 감각적 연상이란 특정 자극이 이전 경험과 연결되어 자동으로 이미지나 감정을 불러오는 심리 현상입니다. 이후로는 노래를 들을 때마다 영화의 특정 장면이 자동으로 따라오게 됐습니다.
이 노래가 프로젝트 헤일메리와 겹쳐 보이는 이유
〈Sign of the Times〉에는 독특한 정서적 양가성(emotional ambivalence)이 있습니다. 양가성이란 상반된 감정이 동시에 공존하는 상태로, 쉽게 말해 슬프면서도 슬프지 않은 느낌이 동시에 드는 상태입니다. 세상이 끝나가는 것처럼 절망적인 상황을 이야기하는데 음악은 오히려 점점 웅장하게 커집니다. 작별을 이야기하면서도 어딘가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완전히 닫지 않습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도 그렇습니다. 우주는 인간이 평생 보기 힘든 장관을 눈앞에 펼쳐 보이지만, 그 안에서 한 인간은 너무나 작고 혼자입니다. 압도적으로 아름답고 동시에 압도적으로 고독한 공간. 그 모순이 이 노래의 분위기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고 느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감정의 이중성을 담은 노래는 특정 경험과 한 번 연결되고 나면 그 연결이 쉽게 끊어지지 않습니다. 〈Sign of the Times〉도 저에게는 이제 단순한 이별 노래가 아니라 끝을 알면서도 앞으로 가야 하는 사람의 노래로 들립니다. 원래부터 그런 노래였는지도 모르지만, 제가 그렇게 듣게 된 건 확실히 영화 이후의 일입니다.
- 웅장하게 고조되는 사운드스케이프와 절망적인 가사 내용의 대비
- 작별과 재회의 가능성이 동시에 공존하는 정서 구조
- 광활한 우주와 고독한 인간이라는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핵심 정서와의 공명
같은 노래인데 내가 달라졌다는 것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음악 자체는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는데, 들을 때의 감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걸 음악 심리학에서는 맥락 의존적 청취(context-dependent listening)라고 부릅니다. 맥락 의존적 청취란 동일한 음악이라도 청취자가 처한 감정 상태나 경험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수용되는 현상입니다. 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에서도 음악과 감정의 상호작용 연구를 꾸준히 다루고 있는 주제입니다.
예전에는 멜로디의 질감이 좋아서 들었습니다. 지금은 가사 속 '떠난다', '끝이 가까워진다', '멀리 떨어진 곳',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는 이미지들이 하나씩 귀에 걸립니다. 제가 달라진 것입니다. 이런 변화가 생기면 노래를 듣는 경험 자체가 훨씬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건, 이처럼 음악의 의미가 개인의 경험에 의해 재구성되는 것이 감정 기억(emotional memory)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감정 기억이란 특정 감정 상태와 함께 형성된 기억이 이후에도 같은 감정적 단서로 재활성화되는 것을 말합니다. 앞으로 이 노래를 어디선가 우연히 듣게 되면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장면들이 먼저 떠오를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출처: Nature — Music and the Brain 관련 연구에서도 음악이 감정 기억을 활성화하는 강력한 매개체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좋은 영화는 집으로 돌아와서도 끝나지 않는다
제가 영화를 보고 나서 음악을 찾아 듣는 습관이 생긴 건 꽤 오래된 일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영화에서 흘러나왔던 OST나 삽입곡을 찾는 경우입니다. 이번처럼 영화에 직접 쓰이지도 않은 노래를 보고 나서 찾게 된 경우는 드문 편이었습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관람 도중 특정 장면에서 이 노래가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이건 영화의 서사 구조가 충분히 강한 정서적 잔향(emotional resonance)을 남겼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정서적 잔향이란 콘텐츠 소비가 끝난 뒤에도 그 감정의 여운이 지속되어 다른 경험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현상입니다. 저에게 이 영화는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나중에 이 노래를 다시 듣다 보면 가사를 영화 장면과 일대일로 맞춰가며 '이 부분이 저 장면이다'라고 해석하고 싶은 충동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Sign of the Times〉는 애초에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위해 만들어진 노래가 아니고, 노래에는 노래 자체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노래가 어떤 사람에게는 이별의 기억을 불러오고, 다른 사람에게는 힘들었던 시기를 떠올리게 하고, 제 경우엔 광활한 우주와 그 안에 홀로 남겨진 한 사람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 그게 오히려 이 노래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리하면, 원래부터 좋은 노래였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야 제가 이 노래 안으로 조금 더 깊이 들어간 것에 가깝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Sign of the Times가 프로젝트 헤일메리 OST인가요?
A. 아닙니다. Harry Styles의 〈Sign of the Times〉는 2017년에 발표된 그의 솔로 데뷔 싱글로, 《프로젝트 헤일메리》와 공식적인 연관은 없습니다. 다만 영화의 정서와 가사의 이미지가 맞닿는 부분이 있어 영화를 본 뒤 자연스럽게 찾게 되는 경우가 있는 노래입니다.
Q. Sign of the Times 가사는 어떤 내용인가요?
A. 노래는 끝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울음을 멈추고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이야기를 반복합니다. 절망적인 상황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어딘가 먼 곳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는 구조입니다. 구체적인 이야기와 추상적인 이미지가 함께 있어 듣는 사람의 경험에 따라 의미가 크게 달라지는 노래입니다.
Q. 영화를 보고 나서 음악이 다르게 들리는 이유가 뭔가요?
A. 음악 심리학에서는 이를 맥락 의존적 청취라고 설명합니다. 강한 감정 경험을 한 직후에는 그 감정 상태가 이후에 듣는 음악의 해석 방식에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감정 기억이 형성되면 이후에 같은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 감정이나 이미지가 자동으로 따라오게 됩니다.
Q. 프로젝트 헤일메리 영화에서 어떤 음악이 인상적이었나요?
A. 영화 자체의 음악도 인상적이었지만, 저는 영화를 보고 난 뒤 오히려 이미 알고 있던 〈Sign of the Times〉가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영화의 정서가 강하게 남아 있는 상태에서 이 노래를 다시 들었을 때, 노래의 이미지들이 영화의 장면과 자연스럽게 겹쳐 보였던 경험이 있습니다.
결론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보고 〈Sign of the Times〉를 다시 찾게 됐다는 것은, 영화가 두 시간 안에 끝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좋은 영화는 극장을 나온 뒤에도 오래 이어지고, 그 여운이 다른 경험들과 연결되면서 새로운 감각을 만들어냅니다. 저는 이번에 그 과정을 꽤 선명하게 경험했습니다.
아직 〈Sign of the Times〉를 가사에 집중해서 들어본 적이 없다면,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먼저 보고 들어보시는 것도 방법입니다. 물론 어떤 경험을 갖고 듣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노래로 들릴 수 있습니다. 그게 이 노래의 재미이기도 합니다.
참고: Harry Styles - Sign of the Times [가사/해석/lyrics] — 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