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설국열차를 처음 볼 때 단백질 블록의 정체가 가장 강렬한 장면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다시 떠올려보면 진짜 무서운 건 그게 아니었습니다. 꼬리칸에서 몇 칸만 앞으로 이동하면 음식이 있고, 교육이 있고, 웃음이 있습니다. 같은 기차 안인데 완전히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 봉준호 감독의 2013년작 설국열차는 그 불편함을 가장 직관적인 방식으로 보여준 영화입니다. 기차 한 칸 차이가 만드는 계급구조설국열차의 배경은 기후공학(Climate Engineering) 실험의 실패입니다. 여기서 기후공학이란 지구 온도를 인위적으로 조절하려는 대규모 기술 개입을 의미하는데, 영화 속에서는 지구 온난화 해결을 위해 살포된 화학물질 CW-7이 오히려 전 지구적 빙하기를 초래합니다. 이 ..
영화를 한 번 보고 난 뒤, 뭔가 놓친 것 같은 찜찜함이 남을 때가 있습니다. 〈기생충〉이 딱 그랬습니다. 제가 처음 봤을 때는 기택 가족이 박 사장 집에 한 명씩 스며드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어서 그냥 쭉 따라갔는데, 다 보고 나서도 계속 지하실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나중에 삭제된 장면들에 대한 분석을 접하고 나서야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게 됐습니다. 지하실이라는 공간이 계속 머릿속에 남았던 이유〈기생충〉에서 계단과 지하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닙니다. 영화 전체를 통틀어 위와 아래를 오가는 수직적 이동이 반복되는데, 봉준호 감독은 이 구조를 통해 계층적 위계, 즉 사회적 신분의 고착화를 시각 언어로 표현했습니다. 여기서 계층적 위계란 특정 집단이 사회 구조 안에서 고정된 자리에 배치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