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단종의 이야기를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린 왕, 수양대군, 영월 유배. 학교에서 배운 그 몇 줄로 충분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나서 역사 기록을 다시 찾아보다가 제가 얼마나 표면만 알고 있었는지 깨달았습니다. 단종이 정확히 어떻게 죽었는지, 그 기록조차 시대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저는 전혀 몰랐습니다. 단종의 사망 기록, 왜 시대마다 다를까역사를 공부하면서 흔히 갖는 착각이 있습니다. 실록(實錄)에 기록된 것은 하나의 정확한 사실이라는 믿음입니다. 여기서 실록이란 조선 시대 왕의 재위 기간 동안 있었던 주요 사건을 편년체로 기록한 공식 역사 문서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왕이 죽고 나서 다음 왕 때 편찬되는 국가 공인 기록물입니다.그런데 단종의 사망 원인을 실록..
자전거를 타던 남자가 경찰에게 이유 없이 돈을 빼앗깁니다. 그런데 그 남자가 해병대에서 특수요원들을 직접 훈련시켰던 교관이었습니다. 저는 이 설정만 보고 시원한 복수극을 기대했는데, 막상 보고 나니 생각보다 훨씬 묵직한 질문이 남았습니다.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대가 있다면영화의 주인공 테리는 사촌 마이크의 보석금을 들고 이동하다가 부패경찰들에게 돈을 빼앗깁니다. 이게 단순한 금전 피해가 아닌 이유가 있습니다. 마이크는 과거 갱단 관련 사건에서 핵심 증인으로 나선 인물인데, 시립 교도소로 이송되면 갱단의 보복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보석금 1만 달러는 곧 사촌의 목숨과 직결된 돈이었습니다.테리가 처음 선택한 방법은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자금 출처 증명서까지 준비해서 경찰서를 찾아가고, 법원에 보석을 신청..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보고 나서 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Harry Styles의 〈Sign of the Times〉를 다시 찾아 재생한 것이었습니다. 예전에도 여러 번 들었던 노래인데, 영화 한 편이 끝나고 들으니 완전히 다른 곡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경험이 신기해서 이 글을 씁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보고 나서야 들리기 시작한 가사영화를 보기 전에도 〈Sign of the Times〉는 제게 익숙한 노래였습니다. 처음 들었을 때는 후반부로 갈수록 웅장하게 쌓이는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가 좋았습니다. 여기서 사운드스케이프란 음악적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전반적인 소리 풍경, 즉 청각적 공간감을 의미합니다. 그 감각이 좋아서 들었지 가사 한 줄 한 줄을 들여다본 적은 없었습니다.그런데 《프로..
《노 웨이 홈》 마지막에 피터가 돌아서는 장면을 보고 나서, 솔직히 다음 영화가 나올 때까지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세상을 구했는데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설정, 그게 너무 오래 남아서였습니다. 그래서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를 보고 왔을 때 가장 먼저 든 감상은 새로운 빌런에 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4년 동안 혼자였던 피터가 어떻게 버텼느냐는 질문이었고, 이 영화는 그 질문에 꽤 묵직하게 답합니다. 4년의 고립이 몸에 청구서를 날렸다《노 웨이 홈》 이후 피터의 일상은 상상보다 훨씬 황량했습니다. MJ와 네드의 근황은 SNS 너머로만 확인하고, 메이 숙모도 없고, 토니도 없습니다. 그나마 남은 건 매일 밤 이어지는 스파이더맨 활동뿐입니다. 뉴욕 범죄율이 80% 이상 줄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