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미리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때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투모로우'를 보고 나서 그 생각이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2051년에서 온 군인들이 "인류가 멸망합니다"라고 선포하는 장면 하나로, 미래를 안다는 게 축복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처음으로 실감했습니다. 시간여행 설정이 만들어낸 잔인한 딜레마영화는 2012년 크리스마스 파티 중 미래의 무장 군인들이 갑자기 나타나며 시작됩니다. 이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2051년, 화이트 스파이크라는 외계 생명체에 의해 인류는 사실상 전멸 직전이며, 싸울 사람이 없어서 과거로부터 병력을 징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여기서 영화가 도입한 장치가 바로 점프 링크(Jump Link)입니다. 점프 링크란 특정 시점의 인간을 미래의 특정 좌표로..
죄를 치르고 나온 사람에게 사회가 두 번째 기회를 줄 수 있을까요. 영화 《모든 비밀스러운 것들》을 보면서 저는 범인이 누구인지보다 이 질문이 훨씬 더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11살에 사건에 연루된 두 소녀가 7년 후 세상으로 돌아왔을 때, 세상은 그들에게 새 출발 대신 두 번째 의심을 건넸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저도 처음엔 그 의심의 편에 서 있었습니다. 심리 스릴러가 던지는 질문: 과거의 기록은 지워지는가영화는 또 다른 아이 실종 사건으로 시작합니다. 담당 형사 낸시와 케빈은 현장에서 수집된 증거들이 7년 전 사건과 소름 끼칠 정도로 겹친다는 사실을 빠르게 알아채고, 막 출소한 로니와 앨리스를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합니다. 저도 초반부에는 별다른 의심 없이 이 흐름을 그대로 따라갔습니..
스트리밍 목록을 뒤지다가 '은퇴한 킬러가 제빵사로 살아간다'는 줄거리를 보고 잠깐 멈칫했습니다. 또 이런 설정인가 싶었는데, 정작 저를 붙잡은 건 액션이 아니라 빵집이었습니다. 사람을 죽이던 손으로 반죽을 치대는 장면이 주는 묘한 대비가 생각보다 오래 머릿속에 남더군요. 은퇴 킬러라는 설정, 얼마나 새로울까솔직히 처음엔 반신반의했습니다. '은퇴 킬러(retired assassin)'라는 캐릭터 공식은 액션 장르에서 이미 수없이 반복된 클리셰(cliché)입니다. 여기서 클리셰란 장르 안에서 너무 많이 쓰여 신선함이 거의 소진된 설정이나 표현을 뜻하는데, 관객이 첫 장면만 봐도 이야기의 구조를 미리 예측하게 만든다는 게 문제입니다.《베이커》의 주인공 마일로도 그 공식을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조직 내 정..
자전거를 타던 남자가 경찰에게 이유 없이 돈을 빼앗깁니다. 그런데 그 남자가 해병대에서 특수요원들을 직접 훈련시켰던 교관이었습니다. 저는 이 설정만 보고 시원한 복수극을 기대했는데, 막상 보고 나니 생각보다 훨씬 묵직한 질문이 남았습니다.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대가 있다면영화의 주인공 테리는 사촌 마이크의 보석금을 들고 이동하다가 부패경찰들에게 돈을 빼앗깁니다. 이게 단순한 금전 피해가 아닌 이유가 있습니다. 마이크는 과거 갱단 관련 사건에서 핵심 증인으로 나선 인물인데, 시립 교도소로 이송되면 갱단의 보복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보석금 1만 달러는 곧 사촌의 목숨과 직결된 돈이었습니다.테리가 처음 선택한 방법은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자금 출처 증명서까지 준비해서 경찰서를 찾아가고, 법원에 보석을 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