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는 모녀 사이의 갈등을 다루는 영화라고 들었는데, 막상 보고 나니 이건 갈등이라는 말로는 턱없이 부족한 이야기였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깊이 상처받는 게 어떤 느낌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무거웠습니다.엄마가 곁에 있어도 아이는 혼자였다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어른들이 생각하는 아이의 고민과 아이가 실제로 느끼는 고민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간격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학교에 잘 다니고 밥을 먹고 친구가 있으면 별 문제 없다고 여기는 시선, 저도 그런 시선을 받으며 자랐습니다.영화 속 이정의 상황은 그 간격을 극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극심한 생리통으로 약을 달라는 딸의 메시지를..
아이가 학교에 잘 다니고 밥도 잘 먹으면 괜찮은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화 '벌새'를 보고 나서 그 기준이 얼마나 허술한 것인지 처음으로 직면했습니다. 가족이 있어도 혼자인 열네 살 소녀의 이야기가 이렇게 오래 마음에 걸릴 줄은 몰랐습니다.가족이 있는데 왜 이렇게 외로울까 — 가족 소외의 실체가족이 곁에 있는데도 외로울 수 있다는 말, 사실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조금 과장된 표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은희를 보면서 그게 과장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은희는 1994년 대치동의 한 아파트에서 부모님, 오빠, 언니와 함께 삽니다. 겉으로만 보면 가족이 갖춰진 평범한 집입니다. 그런데 그 안을 들여다보면, 부모님은 서울대를 목표로 하는 오빠에게 모든 관심이 쏠려 있고, 언니는 연애에 바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