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는 모녀 사이의 갈등을 다루는 영화라고 들었는데, 막상 보고 나니 이건 갈등이라는 말로는 턱없이 부족한 이야기였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깊이 상처받는 게 어떤 느낌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무거웠습니다.엄마가 곁에 있어도 아이는 혼자였다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어른들이 생각하는 아이의 고민과 아이가 실제로 느끼는 고민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간격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학교에 잘 다니고 밥을 먹고 친구가 있으면 별 문제 없다고 여기는 시선, 저도 그런 시선을 받으며 자랐습니다.영화 속 이정의 상황은 그 간격을 극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극심한 생리통으로 약을 달라는 딸의 메시지를..
영화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에서 주인공 인영은 공연 무대 위에서 웃는 바로 그 순간, 엄마가 응급실에서 숨을 거둡니다. 마지막 인사조차 없이 혼자 남겨진 아이가 그 뒤에도 내내 웃으며 살아간다는 설정. 처음엔 그게 인영의 강인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보다 보니 그게 아닌 것 같았습니다.괜찮은 척 — 웃음이 방어막이 되는 순간심리학에서는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감정을 느끼지 못하거나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는 반응을 '정서적 마비(Emotional Numbing)'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정서적 마비란, 뇌가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을 받았을 때 감정 처리 자체를 잠시 차단해버리는 자기 보호 기제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너무 크게 무너질 것 같아서 아예 안 느끼는 쪽을 택하는 것입니다.인영을 보면..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늑대아이〉를 보기 전에는 싱글맘의 헌신을 그린 감동 애니메이션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막상 보고 나서 가장 오래 머릿속에 남은 건 하나의 희생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엄마에게서 태어나 같은 집에서 자란 두 아이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살아가는 그 모습이었습니다. 부모가 아이의 길을 어디까지 정해줄 수 있는지, 그리고 언제 손을 놓아야 하는지를 이 영화는 조용하지만 묵직하게 묻고 있었습니다.정체성 혼란, 같은 집에서 다른 아이가 자라다일반적으로 형제자매는 비슷하게 자란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제가 직접 이 영화를 보고 나서는 그 전제가 흔들렸습니다. 유키와 아메는 같은 어머니 하나에게서 태어났고, 같은 낡은 시골집에서 자랐으며, 둘 다 인간과 늑대라는 이중 정체성을 가지..
솔직히 저는 학교폭력을 다룬 영화를 볼 때 주인공의 통쾌한 반격 장면에 먼저 눈이 가는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처음으로 제가 그동안 잘못된 곳을 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정작 오래 머릿속에 남은 건 채영의 화려한 공수도 기술이 아니라, 도움을 요청할 방법조차 몰라 그냥 버티던 종구의 표정이었거든요. 학교 배경: 어른들의 침묵이 만든 폭력의 구조영화는 여러 학교를 전전한 전학생 채영이 새 학교에 적응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아버지는 "그냥 무시하고 살아라"라고 당부하지만, 채영은 그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무관심 자체가 폭력에 동조하는 행위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제가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자주 목격한 장면이 이겁니다. 갈등이 생기면 일단 "서로 떨어져 있으라"라고 말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