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뒤, 우리는 얼마나 오래 그 사람의 흔적을 찾게 될까요. 저는 《아이 오리진스》를 보면서 그 질문이 생각보다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환생을 소재로 한 영화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가 직접 보고 느낀 건 좀 달랐습니다. 이 작품의 진짜 무게는 환생의 가능성이 아니라, 잃어버린 사람을 향한 인간의 집착과 그 집착이 어떻게 우리의 신념을 흔드는가에 있었습니다.홍채 정체성 — 눈 하나로 사람을 정의할 수 있을까영화의 핵심 장치는 홍채 인식(iris recognition)입니다. 홍채 인식이란 눈의 홍채가 가진 고유한 패턴을 생체정보로 활용해 개인을 식별하는 기술로, 지문보다 위변조가 어렵다는 이유로 보안 분야에서 실제로 활용됩니다. 주인공 이안은 바로 이 홍채의 기원을 연구하는 과학자..
외계인이 등장하는 SF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무서웠던 장면이 외계인이 아니었다면, 저만 그런 걸까요. 《아스트로 우주 전쟁》과 《컨택트 2020》을 연달아 보고 난 뒤 제가 계속 머릿속에서 꺼내게 된 장면은 정체불명의 비행체도, 납치 시퀀스도 아니었습니다. 외계 기술을 손에 쥔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하는 행동들이었습니다. 두 영화를 통해 기술 윤리, 인간 욕망, 그리고 정체성이라는 세 가지 질문을 풀어보겠습니다. 외계 기술 앞에서 드러나는 인간 욕망SF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 사이에서는 외계인의 공격성이나 기술 수준이 이야기의 핵심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두 영화를 보면서 그 반대 방향이 훨씬 인상 깊었습니다. 외계인이 위험한지 아닌지가 아직 불분명한 시점에서, 인간들은 이미 서로를 속이고 이용..
솔직히 처음엔 단순한 시간 여행 로맨스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의사가 과거로 돌아가 그를 구한다는 이야기,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설정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딸 수아의 존재가 등장하는 순간, 저는 그만 손을 멈추고 한참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과거를 바꾸는 일이 단순히 아픈 기억 하나를 지우는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이 영화는 꽤 집요하게 파고듭니다.과거 변경이 불러오는 인과율의 문제저도 처음엔 수연의 선택이 당연하다고 느꼈습니다. 사랑하는 연하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지 않을까요. 그런데 영화는 그 기대를 금방 흔들어버립니다.극 중 수연은 캄보디아 의료 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노인으로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알약 10개를 받..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는 모녀 사이의 갈등을 다루는 영화라고 들었는데, 막상 보고 나니 이건 갈등이라는 말로는 턱없이 부족한 이야기였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깊이 상처받는 게 어떤 느낌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무거웠습니다.엄마가 곁에 있어도 아이는 혼자였다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어른들이 생각하는 아이의 고민과 아이가 실제로 느끼는 고민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간격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학교에 잘 다니고 밥을 먹고 친구가 있으면 별 문제 없다고 여기는 시선, 저도 그런 시선을 받으며 자랐습니다.영화 속 이정의 상황은 그 간격을 극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극심한 생리통으로 약을 달라는 딸의 메시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