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동 가문의 18대 후예가 대학 교수, 고등학교 교사, 전업주부로 살아가고 있다면 어떨까요. 영화 《홍길동의 후예》는 바로 그 설정 하나로 시작합니다. 처음 제목을 봤을 때 저는 솔직히 그냥 고전 리메이크물이겠거니 했는데, 막상 보고 나서는 예상보다 훨씬 영리하게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대판 의적 설정,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이 영화가 내세우는 가장 큰 장치는 '의적(義賊) 가문'이라는 개념입니다. 여기서 의적이란 단순히 부자의 돈을 빼앗는 도둑이 아니라, 가난한 자의 물건은 절대 손대지 않고 탈취한 것을 사리사욕에 쓰지 않는다는 엄격한 원칙 아래 움직이는 집단을 말합니다. 이 철칙이 18대에 걸쳐 이어져 왔다는 설정이 단순한 범죄극과 이 영화를 가르는 경계선이 됩니다.제가 직접 영화..
매일 얼굴을 보는 사람을 진짜 잘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영화 를 보고 나서 그 물음이 머릿속에 오래 남았습니다. 기억을 잃은 아내가 남편의 죽음 이후 카드 내역 하나씩을 따라가며 전혀 몰랐던 진실과 마주하는 이야기입니다. 보는 내내 손에 땀이 났고, 끝나고 나서는 묘하게 불안한 기분이 가시질 않았습니다.기억상실이라는 설정이 만드는 불안감영화는 악몽에서 깨어난 덕희의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남편 준석이 곁에서 그녀를 다독이고, 두 사람은 평범하게 아침을 먹습니다. 언뜻 보면 흔한 부부의 일상입니다. 그런데 이 장면이 뒤로 갈수록 완전히 다른 의미로 읽힙니다.덕희는 교통사고 이후 역행성 기억상실(Retrograde Amnesia)을 겪고 있습니다. 역행성 기억상실이란 사고나 충격 이전의 기억이 지워지는 ..
솔직히 처음엔 그냥 또 하나의 좀비 블록버스터겠지 싶었습니다. 감염, 봉쇄, 탈출. 익숙한 공식이니까요. 그런데 예고편을 보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군체》의 감염자들은 한 번 속은 방법에 다시 속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무리 전체가 즉시 공유합니다. 이건 단순히 빠른 좀비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집단지성 좀비, 이 설정이 왜 무서운 걸까요제가 좀비영화를 볼 때마다 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머릿속으로 생존 공략을 짜는 겁니다. 소리에 반응하면 조용히 움직이고, 빛에 반응하면 어둠을 이용하고, 느리면 거리를 벌린다. 이 공식이 통하는 동안은 긴장감 속에서도 어딘가 안도감이 있었습니다.그런데 《군체》에서는 그 공식이 처음부터 무너집니다. 불을 끄자 감염자들이 잠잠해진다는 걸 생존자..
예매율 30%를 찍은 영화가 개봉 전부터 이 정도 수치를 기록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닙니다. 그것도 액션 블록버스터가 아니라 시대극 미스터리 장르에서요. 처음엔 캐스팅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영상을 끝까지 보고 나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머릿속에 남은 건 배우 이름이 아니라 "그날 총성은 몇 발이었는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사라진 두 발, 이 영화의 출발점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 도중 총격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공식 기록에는 다섯 발 짜리 권총에 한 발이 불발되었으니 실제 발사된 총알은 네 발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수거된 탄흔(彈痕)은 여섯 개였습니다. 탄흔이란 총알이 박히거나 스친 자국을 의미하는데, 단순히 계산이 맞지 않는 수준이 아닌 두 발 분량의 흔적이 공식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