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치르고 나온 사람에게 사회가 두 번째 기회를 줄 수 있을까요. 영화 《모든 비밀스러운 것들》을 보면서 저는 범인이 누구인지보다 이 질문이 훨씬 더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11살에 사건에 연루된 두 소녀가 7년 후 세상으로 돌아왔을 때, 세상은 그들에게 새 출발 대신 두 번째 의심을 건넸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저도 처음엔 그 의심의 편에 서 있었습니다. 심리 스릴러가 던지는 질문: 과거의 기록은 지워지는가영화는 또 다른 아이 실종 사건으로 시작합니다. 담당 형사 낸시와 케빈은 현장에서 수집된 증거들이 7년 전 사건과 소름 끼칠 정도로 겹친다는 사실을 빠르게 알아채고, 막 출소한 로니와 앨리스를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합니다. 저도 초반부에는 별다른 의심 없이 이 흐름을 그대로 따라갔습니..
영화관에서 선택할 때는 '그냥 유령 나오는 배 공포물이겠지' 하고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귀신보다 금괴가 더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2002년작 《고스트 쉽》은 침몰 직전의 이탈리아 유람선 안토니아 그라자호를 배경으로, 위험을 알면서도 눈앞의 보상을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며 '탐욕'이라는 단어를 새삼 다르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유령선 안토니아 그라자, 1962년의 공백혹시 실제로 존재했던 유령선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으십니까? 역사적으로 선원도 화물도 흔적 없이 사라진 선박 사례는 드물지 않습니다. 가장 유명한 사례가 1872년 대서양에서 발견된 메리 셀레스트호로, 이 배는 승무원 전원이 사라진 채 항해 중이던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출처..
스트리밍 목록을 뒤지다가 '은퇴한 킬러가 제빵사로 살아간다'는 줄거리를 보고 잠깐 멈칫했습니다. 또 이런 설정인가 싶었는데, 정작 저를 붙잡은 건 액션이 아니라 빵집이었습니다. 사람을 죽이던 손으로 반죽을 치대는 장면이 주는 묘한 대비가 생각보다 오래 머릿속에 남더군요. 은퇴 킬러라는 설정, 얼마나 새로울까솔직히 처음엔 반신반의했습니다. '은퇴 킬러(retired assassin)'라는 캐릭터 공식은 액션 장르에서 이미 수없이 반복된 클리셰(cliché)입니다. 여기서 클리셰란 장르 안에서 너무 많이 쓰여 신선함이 거의 소진된 설정이나 표현을 뜻하는데, 관객이 첫 장면만 봐도 이야기의 구조를 미리 예측하게 만든다는 게 문제입니다.《베이커》의 주인공 마일로도 그 공식을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조직 내 정..
홍길동 가문의 18대 후예가 대학 교수, 고등학교 교사, 전업주부로 살아가고 있다면 어떨까요. 영화 《홍길동의 후예》는 바로 그 설정 하나로 시작합니다. 처음 제목을 봤을 때 저는 솔직히 그냥 고전 리메이크물이겠거니 했는데, 막상 보고 나서는 예상보다 훨씬 영리하게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대판 의적 설정,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이 영화가 내세우는 가장 큰 장치는 '의적(義賊) 가문'이라는 개념입니다. 여기서 의적이란 단순히 부자의 돈을 빼앗는 도둑이 아니라, 가난한 자의 물건은 절대 손대지 않고 탈취한 것을 사리사욕에 쓰지 않는다는 엄격한 원칙 아래 움직이는 집단을 말합니다. 이 철칙이 18대에 걸쳐 이어져 왔다는 설정이 단순한 범죄극과 이 영화를 가르는 경계선이 됩니다.제가 직접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