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그 행동은 잘못됐어"라고 말하면서도 속으로 '부모님이 어떻게 받아들이실까'를 먼저 계산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교사로 일하다 보면 이런 장면이 낯설지 않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은 바로 그 답답함을 출발점으로 삼는 작품입니다. 비현실적인 설정인데도 이상하게 설득력이 있고, 말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계속 보게 됩니다. 교권 붕괴가 현실이 된 자리에서 판타지가 태어났다《참교육》의 핵심 설정은 '교권보호국(교권국)'입니다. 여기서 교권보호국이란 국가가 학교에 특수 감독관을 파견해 정상적인 수업이 불가능한 상황을 직접 개입하여 바로잡는 기관을 의미합니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조직이지만, 이 설정이 황당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드라마는 교권국이 탄생하기까지의 맥락을 아주 구체적으..
솔직히 저는 오랫동안 '공감을 잘하는 사람이 좋은 판단을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미스 함무라비〉를 보면서 그 믿음이 조금씩 흔들렸습니다. 감정에 끌려가는 판단과 감정을 이해하는 판단은 전혀 다른 것이었고, 그 차이를 드라마가 꽤 날카롭게 짚어냈습니다. 12년 만의 재회, 그리고 어색한 원칙박차오름과 임바른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신임 판사로 나란히 첫 출근하는 장면은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12년 9개월 10일 만에 다시 만난 학창 시절 첫사랑 사이인데, 바른은 공적 공간에서 사적 친분을 철저히 배제하는 원칙을 앞세웁니다.처음에는 그게 너무 차갑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봤는데,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다가 같은 직장에서 마주친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건 생각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그..
솔직히 처음 〈누룩〉 이야기를 들었을 때, 18살 소녀가 화장품 공병에 막걸리를 담아 학교에 가지고 다닌다는 설정이 그냥 기이한 캐릭터 설정쯤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이 영화는 막걸리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배우 장동윤이 감독으로 데뷔한 이 작품은 팬데믹 시기 '막걸리가 병을 치료한다'는 발상에서 출발해, 사람이 고통을 버티기 위해 무언가에 의존하게 되는 과정을 꽤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오래 머문 질문은 하나였습니다. 그것이 치유라면, 사라졌을 때 삶이 무너지는 것도 치유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막걸리 집착, 처음엔 저도 오빠 편이었습니다일반적으로 술에 집착하는 청소년 캐릭터가 나오면 그것은 곧 '비행'이나 '중독'의 신호로 읽힙니다. 제가 처음 다슬을 봤을 때..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볼 때 천재가 역경을 딛고 성공한다는 뻔한 이야기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중반부를 넘기면서 제가 믿어온 장면들이 한꺼번에 흔들리던 순간, 화면을 멈추고 싶을 만큼 당황했습니다. 〈뷰티풀 마인드〉는 천재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이 믿어온 세계가 무너진 뒤 다시 삶을 선택한 사람의 이야기였습니다. 망상과 현실 사이 — 관객도 속았다영화가 시작되면 존 내쉬는 프린스턴 대학교에 시험도 없이 장학금을 받고 입학하는 천재로 등장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의 수식 장면을 보며 '역시 천재를 다룬 영화구나' 하고 가볍게 받아들였습니다. 비밀 임무를 맡고 암호를 해독한다는 설정도 수학 천재라는 배경과 꽤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진다고 느꼈습니다.그런데 중반부에서 그 모든 것이 조현병(Schizo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