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사신이 주인공인 이야기를 볼 때마다 처음엔 늘 비슷한 생각부터 했습니다. 죽어도 다시 살아난다면 세상에 두려울 게 없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부활남: 더 레드'의 설정을 따라가다 보니 그 생각이 조금씩 흔들렸습니다. 죽지 않는 능력이 아니라, 죽음을 반복해서 겪어야 하는 운명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불사 설정이 만드는 긴장감의 구조주인공 석환은 죽어도 3일 뒤에 다시 살아납니다. 겉으로 보면 완벽한 능력처럼 보이지만, 이 설정이 액션 서사(narrative structure)에서 안고 가는 문제는 꽤 근본적입니다. 서사 구조란 이야기가 긴장감을 만들고 해소하는 흐름의 뼈대를 말합니다. 보통 주인공이 죽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바로 그 긴장감의 핵심 동력인데, 석환에게는 그 조건이 처음부터 빠져 ..
"나에게도 저런 가게가 나타난다면 어떤 과자를 고를까?" 영화 〈이상한 과자가게 전천당〉을 보는 내내 이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전 세계 1,100만 부 이상 판매된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라미란과 이레가 각각 전천당 주인 홍자와 화황당 주인 요미를 연기합니다. 제가 직접 스토리를 따라가며 느낀 것은, 이 영화가 단순한 마법 과자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창이와 도담 — 같은 능력, 다른 방향일반적으로 마법 아이템이 등장하는 이야기에서는 '어떤 능력을 얻는가'가 핵심처럼 느껴집니다. 제가 어릴 때도 그랬습니다. 공부를 잘하게 해주는 약이 있다면 당장 먹겠다고 생각했고, 힘이 세지는 음료가 있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창이와 도담의 이야기를 나란히 놓고 보니 그..
영화를 한 번 보고 난 뒤, 뭔가 놓친 것 같은 찜찜함이 남을 때가 있습니다. 〈기생충〉이 딱 그랬습니다. 제가 처음 봤을 때는 기택 가족이 박 사장 집에 한 명씩 스며드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어서 그냥 쭉 따라갔는데, 다 보고 나서도 계속 지하실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나중에 삭제된 장면들에 대한 분석을 접하고 나서야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게 됐습니다. 지하실이라는 공간이 계속 머릿속에 남았던 이유〈기생충〉에서 계단과 지하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닙니다. 영화 전체를 통틀어 위와 아래를 오가는 수직적 이동이 반복되는데, 봉준호 감독은 이 구조를 통해 계층적 위계, 즉 사회적 신분의 고착화를 시각 언어로 표현했습니다. 여기서 계층적 위계란 특정 집단이 사회 구조 안에서 고정된 자리에 배치되어..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 〈가비〉를 처음 접했을 때 저는 조선시대 커피 문화를 다룬 가벼운 사극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고종이 커피를 즐겼다는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얹은 이야기겠거니 했는데, 막상 따라가다 보니 커피 한 잔에 첩보, 신뢰, 그리고 한 인간의 정체성이 통째로 담겨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왜 그 선택을 했을까"라는 질문이 영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강요된 선택 앞에서 우리는 쉽게 판단할 수 있을까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먼저 걸린 건 두 주인공이 처음부터 악인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따야는 조선 역관의 딸로 귀하게 자랐고, 일리치는 그 집안에서 시중을 들던 인물이었습니다. 어느 날 밤 정체불명의 괴한에게 아버지가 살해당하고, 임종 직전 남긴 유언 하나—서로를 지켜달라는..